“새 글 하나 올려 줘.”
자동 글 공장이 출근했다. 하지만 글을 다루기도 전에 원고 목록을 보고, 검토 현황을 보고, 번역 상황을 보고, 게시 대기 목록을 확인한다. 관리 기록을 다시 만들고 저장한 다음 숫자가 맞는지 또 검사한다.
준비에 약 23분을 썼는데, 정작 글을 처리하는 단계에는 들어가지 못했다.
익명화한 실행 기록 한 건에서 확인된 일이다. 전체 상태를 정리하는 데 약 8분, 저장에 약 15분이 걸린 끝에 작업이 강제로 종료됐다. 어느 시스템이나 항상 그렇다는 뜻은 아니다.
직원 전원이 출근해서 조회하고 출석부에 도장 찍은 뒤 아무것도 만들지 않고 퇴근한 셈이다. 그런데 이 공장은 애초에 무인 자동 공장이었다.
장부를 위한 장부가 늘어난다
진행표는 원래 유용하다. 어떤 글이 준비됐고, 어떤 글이 필요한 확인을 통과했고, 어떤 글이 아직 게시되지 않았는지 알면 일을 중복하지 않는다.
그런데 원고 목록, 검토 완료 목록, 번역 대기 목록, 게시 대기 목록, 작업자별 진행표가 줄줄이 생긴다. 숫자가 서로 다르면 이제는 진행표끼리 맞춰 보는 업무까지 필요하다.
“새 글은 어디 있어?” “관리표를 갱신하고 있습니다.” “끝났어?” “관리표 갱신 기록을 확인하고 있습니다.”
회계팀이 로봇을 만들었더니, 로봇도 회계팀에 입사했다.
장부를 지키느라 공장이 멈춘다
게시와 관련 없는 진행표를 고쳐도 시스템이 전체 게시 자료가 달라졌다고 판단할 때가 있다. 게시 담당이 자료를 다시 만드는 사이 다른 표가 바뀌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
그래서 게시 중에는 다른 담당이 기록을 쓰지 못하게 막는 규칙이 생기기도 한다.
글을 내보내려고 만든 장부가 글을 내보내는 일을 방해한다.
마트 계산대가 줄 선 사람 수를 다시 세려고 계산을 중단하는 상황이다. 손님은 그냥 우유 하나 사러 왔는데.
분업이 아니라 장부 공동 편집
필요한 역할은 단순하다. 작성 담당은 원고를 저장한다. 게시 담당은 그 원고를 확인해 독자에게 보여 준다. 확인 담당은 페이지가 실제로 열리는지 검사한다.
각자 자기 일을 끝내면 된다. 모두가 같은 거대한 관리표를 수정하고 최신판을 기다려야 한다면, 표 하나가 멈출 때 모두 멈춘다.
도장 찍는 창구가 하나뿐이라면 사람을 열 명 더 뽑아도 대기 줄만 길어진다.
그럼 장부를 다 지워도 될까?
중복된 표는 줄여도 된다. 하지만 중요한 기록까지 없애면 곤란하다.
어떤 글의 어떤 버전이 이미 게시됐는지, 중간에 멈추면 어디서 다시 시작해야 하는지는 알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같은 글을 두 번 올리거나 옛 원고가 새 원고를 덮을 수 있다.
이미 게시된 페이지나 기존 저장소에서 확인할 수 있는 정보라면, 여러 표에 다시 적지 않아도 된다.
바뀐 글만 확인하고, 변하지 않은 결과는 그대로 활용한다. 통계와 감시는 그 일을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 움직이면 된다.
성과는 관리표 갱신 횟수가 아니라 독자가 실제로 새로 읽을 수 있게 된 글 수로 봐야 한다.
“오늘의 실적: 모든 표 일치. 새 글 0개.”
그 만점짜리 성적표는 반납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