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만든 미소녀 3D 아바타가 어느 날 갑자기 초파리에서 재구성한 신경 네트워크의 몸으로 쓰이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고 해 보자.
“이렇게 쓰일 줄은 몰랐다”라는 반응이 나오는 것이 당연하다.
보통 3D 아바타는 게임, 방송, VR, 영상, 데스크톱 캐릭터 등에 쓰인다. 그런데 거기서 갑자기
“초파리 신경계에 몸을 달아 주자”
로 점프한다.
용도의 점프 폭이 너무 크다.
그런데 이것은 단순한 인터넷 장난만은 아니다. 2026년에는 성체 수컷 초파리의 뇌와 복측신경삭을 포함한 중추신경계 전체의 상세한 connectome이 공개됐다. connectome은 쉽게 말해 어떤 뉴런이 어떤 뉴런과 연결되어 있는지를 기록한 거대한 배선도다.[1][2]
이 데이터가 공개되면서 배선을 계산 신경 모델로 만들고, 그 모델을 가상 몸이나 게임에 연결하는 실험이 훨씬 현실적인 일이 됐다.
그리고 그 몸 가운데 하나가 하필 미소녀가 됐다.
신경과학 교과서에는 안 실릴 가능성이 높지만, 2026년 인터넷의 진화로서는 꽤 자연스럽다.
1. 작품을 써 주는 것만으로도 기쁜데, 사용처가 연구실 너머로 날아가 버렸다
창작물을 공개하면 제작자가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사람들이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
기존 제품이 원래 목적과 다른 기능으로 전용되는 현상은 혁신 연구에서 **exaptation(전용·기능 전환)**이라고 부른다. 3,000건이 넘는 IKEA 사용자 해킹을 분석한 연구에서는 거의 절반이 원래 기능에서 벗어난 새로운 기능을 가진 사용이었다.[3]
이번 사례가 강한 이유는 거리가 너무 멀기 때문이다.
“의상을 개조했습니다”가 아니다.
“방송에 사용했습니다”도 아니다.
“당신이 만든 아바타를 초파리 신경 모델의 몸으로 줬습니다.”
제작자 입장에서는 작품이 소비된 것이 아니라 전혀 다른 세계와 연결된 셈이다.
작품에 두 번째 인생이 생겼다.
그 두 번째 인생이 ‘초파리의 몸’이라는 점이 이야기의 완성도를 높인다.
2. 살아 있는 초파리 뇌에 USB 케이블을 꽂은 것은 아니다
가장 중요한 구분이다.
“초파리 뇌가 아바타를 조종한다”고 들으면 살아 있는 초파리를 실험실에 고정하고 뇌에 전극을 꽂아 실시간 신경 활동으로 캐릭터를 움직이는 장면을 떠올리기 쉽다.
이번에 화제가 된 흐름은 그것과 다르다.
2026년 MaleCNS는 실제 성체 수컷 초파리의 중추신경계를 전자현미경으로 촬영하고 신경세포와 연결을 3차원으로 재구성한 구조 데이터다. 논문에는 완전히 교정·주석된 166,691개의 뉴런과 11,691개의 유형이 포함된다.[1][2]
대략적인 과정은 이렇다.
실제 신경조직 → 고정·염색 → 전자현미경 촬영 → AI와 사람의 재구성 → 디지털 배선도.
원래 생물이 컴퓨터 안에서 계속 살아 있는 것이 아니다.
“초파리 뇌를 이식했다”보다는 실제 신경계에서 읽어 낸 배선을 계산 모델로 다시 움직여 보려 한다고 설명하는 편이 정확하다.
3. 그렇다면 ‘디지털화된 초파리’라고 불러도 될까
SF식 줄임말로는 꽤 가깝다.
생물의 신경계를 읽고, 디지털 모델로 만들고, 가상 몸에 연결한다. 겉모습만 보면 디지털화다.
하지만 과학적으로는 큰 주의사항이 붙는다.
connectome은 뇌 전체가 아니다.
connectome이 주로 기록하는 것은 구조적 연결이다. 실제 신경계에서는 같은 배선 위에서도 상태가 계속 변한다.
시냅스의 실제 강도, 흥분과 억제, 신경전달물질과 수용체, 이온 채널, 신경조절물질, 가소성, 순간적인 전기 활동, 아교세포, 호르몬과 대사, 몸에서 돌아오는 감각 정보가 모두 영향을 준다.
도로 지도가 완벽해도 지금 어떤 신호등이 빨간지, 어디가 막히는지, 모든 운전자가 어디로 가는지는 알 수 없는 것과 비슷하다.
배선도는 매우 중요하지만, 특정 개체의 뇌가 그 순간 하던 모든 일을 자동으로 보존하지는 않는다.
4. 그런데 배선만으로도 꽤 많은 것이 나온다는 점이 더 놀랍다
connectome은 거대한 해부학 도감일 뿐일까?
그렇지 않다.
2024년 Nature 연구에서는 초파리 전뇌 connectome과 신경전달물질 정보를 이용해 단순화한 leaky integrate-and-fire(LIF) 모델을 만들었다.[4]
LIF는 생물학적 뉴런을 완전히 재현하는 모델이 아니다. 입력이 쌓이고 임계치를 넘으면 발화한 뒤 초기화되는 식의 간단한 모델이다.
그런데도 설탕이나 물을 감지하는 감각 뉴런을 자극하자 섭식과 관련된 신경 활동을 상당히 예측했고, 일부 예측은 실제 생물학적 실험으로 검증됐다.[4]
따라서 두 문장은 동시에 참일 수 있다.
“실제 뇌의 완전한 복제는 아니다.”
그리고
“배선만으로도 의미 있는 기능을 상당히 예측할 수 있다.”
바로 이 부분이 재미있다.
5. 그럼 왜 미소녀 아바타는 12시간 훈련해도 제대로 걷지 못했을까
화제가 된 공개 게시물에서는 12시간 넘게 훈련했지만 적응하는 기미가 거의 없고, 이후에도 전진은 거의 하지 못한다고 보고했다.
여기서
“초파리 뇌가 12시간 공부하고도 걷기를 못 배웠다”
고 말하면 너무 빨리 결론 내리는 것이다.
초파리의 신경계는 초파리의 다리, 관절, 근육, 감각기관, 무게, 마찰, 날개, 체형과 함께 진화했다.
그런데 갑자기
“오늘부터 네 몸은 사람 형태의 미소녀다. 관절 수와 길이와 질량도 다르다. 잘해 봐.”
라고 하면 몸과 신경계의 대응 관계가 완전히 깨진다.
또 공개 게시물만으로는 ‘훈련’이 신경 모델 내부의 어떤 파라미터를 바꾸는지, 출력층을 학습하는지, 관절 제어기를 학습하는지, connectome 밖에서 강화학습을 하는지 확정할 수 없다.
따라서 안전한 결론은 그 구현에서 connectome 유래 신호를 새로운 몸에 적응시키는 것이 아직 어렵다는 정도다.
12시간 만에 자연스럽게 미소녀로 걷기 시작했다면 오히려 그쪽이 더 무섭다.
6. 요즘 ‘초파리 뇌를 ○○에 연결했다’가 많아 보이는 데는 이유가 있다
2024년에는 성체 암컷 초파리 전뇌 connectome이 공개됐다. 139,255개의 뉴런과 5,450만 개의 시냅스를 포함한다.[5]
2026년에는 수컷의 뇌와 복측신경삭을 포함한 중추신경계 전체로 범위가 확장된 MaleCNS가 공개됐다. Google Research는 이를 당시 가장 큰 뇌 지도라고 설명했다.[1]
중요한 것은 논문만 공개된 것이 아니라 데이터가 계산 가능한 형태로 열렸다는 점이다.
연구자뿐 아니라 엔지니어도 만질 수 있다.
게임에 연결한다.
3D 초파리 몸에 연결한다.
가상세계에 넣는다.
그리고 누군가는 미소녀에 연결한다.
오픈 데이터는 과학자뿐 아니라 ‘이상한 생각을 하는 사람’에게도 연구 재료를 배포한다.
그래서 원래 논문에는 없던 사용법이 폭발한다.
7. 핵심은 ‘초파리를 재현했다’가 아니라 ‘초파리조차 이렇게 어렵다’일 수 있다
처음에는 “이제 초파리 뇌를 컴퓨터에 넣을 수 있구나”라는 느낌이 든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감상이 뒤집힌다.
“초파리도 이렇게 어렵다고?”
인간과 비교하면 매우 작은 신경계인데도 10만 개를 훨씬 넘는 뉴런과 수천만 규모의 시냅스가 있고, 배선을 얻은 뒤에도 구조가 실제 동역학과 행동으로 어떻게 이어지는지는 연구 문제로 남는다.[5][4]
뇌는 케이블 묶음이 아니다.
구조 × 전기 활동 × 화학 × 가소성 × 몸 × 환경 × 시간
이 결합된 동적 시스템이다.
8. 인간도 언젠가 같은 일을 할 수 있을까
부분적으로는 이미 시작됐다.
Google Research와 Harvard 연구진은 사람의 측두피질 약 1세제곱밀리미터를 나노미터 수준으로 재구성했다.[6]
그 작은 조직에 약 57,000개의 세포, 그중 약 16,000개의 뉴런, 약 1억 5천만 개의 시냅스가 있었고 데이터는 약 1.4 petabytes였다.[6]
1 mm³가 140만 GB다.
Google Research에 따르면 H01은 인간 뇌 전체 부피의 약 백만분의 1이다. 현재와 비슷한 고해상도 방법을 전뇌에 확대하면 최대 zettabyte, 즉 10억 terabytes 수준의 데이터 수집·분석이 필요할 수 있으며 현재 기술로는 불가능한 규모다.[7]
따라서 “인간 connectome은 물리적으로 절대 불가능하다”고 단정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초파리를 했으니 이제 사람만 스캔하면 된다”도 전혀 아니다.
9. 진짜 어려운 문제는 배선도를 완성한 다음에도 남는다
미래에 인간 전뇌 connectome을 완벽히 얻었다고 가정하자.
그래도 어떤 뉴런 모델을 쓸지, 시냅스 강도를 얼마나 보존할지, 수용체와 이온 채널, 신경조절, 아교세포, 유전자 발현, 대사, 호르몬, 순간적인 전기 상태를 얼마나 재현할지 결정해야 한다.
몸이 필요한지도 모른다.
몸이 바뀌면 같은 사람인가?
마지막에는 더 불편한 질문이 나온다.
시뮬레이션이 켜졌을 때 그것이 ‘나’인가?
connectome을 복사할 수 있다는 것과 인격, 기억, 주관적 의식을 복사할 수 있다는 것은 같은 말이 아니다.
현재 과학에는 그 점프를 보장하는 실험이나 합의된 이론이 없다.
10. 결국 뇌가 너무 대단하다는 이야기로 돌아온다
사람은 “배선만 다 읽으면 꽤 알 수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하고 조직을 자르고 촬영하고 AI로 뉴런을 추적해 거대한 그래프를 만들었다.
실제로 상세한 배선도를 만들 수 있는 단계까지 왔다.
그런데 결과가
“배선도만 해도 엄청나게 크고, 그 위에 동적 상태가 더 있습니다.”
였다.
초파리조차 그렇다.
과학이 발전할수록 “뇌가 의외로 단순했네”보다는
“도대체 몇 겹이야?”
에 가까워진다.
11. 다시 미소녀 아바타로 돌아오자
연구자들이 여러 해 동안 전자현미경, AI, 신경해부학을 이용해 초파리 신경계를 정밀하게 지도화했다.
데이터가 공개됐다.
누군가 컴퓨터에서 돌렸다.
또 다른 누군가 가상 몸에 연결했다.
그리고 원래 아바타 제작자가 인터넷을 보다가 발견했다.
자신이 만든 미소녀가 초파리의 몸이 되어 있었다.
“이렇게 쓰일 줄은 몰랐다.”
당연히 몰랐을 것이다.
하지만 피해가 없고, 기술적으로 흥미롭고, 제작자가 웃을 정도로 재미있는 예상 밖 사용이라면 창작물로서는 꽤 행복한 두 번째 인생일 수 있다.
창작과 오픈 사이언스가 한 지점에서 충돌해 나온 결과가
초파리 connectome 탑재 미소녀
다.
미래는 생각보다 빨리 왔다.
다만 예상하던 방향에서 오지 않았을 뿐이다.
- Google Research, A connectomics milestone: Mapping the complete male fruit fly brain, 2026-09-03 research.google
- Berg et al., Sexual dimorphism in the complete connectome of the Drosophila male central nervous system, Cell, 2026 research.google
- Chan & Lim, The Emergence of Novel Product Uses: An Investigation of Exaptations in IKEA Hacks, Management Science pubsonline.informs.org
- Shiu et al., A Drosophila computational brain model reveals sensorimotor processing, Nature, 2024 nature.com
- Dorkenwald et al., Neuronal wiring diagram of an adult brain, Nature, 2024 nature.com
- Shapson-Coe et al., A petavoxel fragment of human cerebral cortex reconstructed at nanoscale resolution, Science, 2024 research.google
- Google Research, Google Research embarks on effort to map a mouse brain research.google
